
2024년 3월 8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알지 못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왜 이렇게 허전하고 가슴 한 구석이 아련할까?
하지만, 이런 감정의 원인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학창 시절의 꿈과, 친구들과 함께 느꼈던 즐거움을 한순간에 잃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해 3월 일본의 최고 만화가이자 만화 ‘드래곤볼’의 아버지인 ‘토리야마 아키라’가 사망했다. 그의 나이 불과 68세, 이제 한창 만화가로 대부의 자리에 올라 많은 만화가들에게 조언과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며 전세계 만화의 기둥이 될 나이에 사망한 것이다. 원인은 ‘급성경막하혈종’이라는 병이라고 한다. 뇌 질환의 일종인데 아마도 선천적으로 약했던 체력과 연재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의 죽음은 너무나 아쉽지만 이번 그의 죽음으로 드래곤볼과 그의 많은 만화들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의 일러스트가 담긴 드래곤볼 재발행본은 인터넷 상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그의 사망을 애도하며,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했던 드래곤볼의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라는 작가를 되짚어 보기로 했다.
1980년대 후반, 아마도 내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무엇인가 열풍처럼 번지는 유행어가 있었다.
“에네르기 파~~~” “태양권!” “낭아풍풍권!”
지금 들어보면 오금이 저리고, 오그라들 것 같은 단어들이지만 그 당시 꿈 많은 소년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유행어이고, 10분의 짧은 쉬는 시간에 놀 수 있는 최고의 놀이였다. 손에서 장풍이 나가는 듯한 모습으로 에네르기 파라고 외치면 어김없이 그걸 받아주는 친구들이 있어 참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에서 해적판 드래곤볼 만화책을 돌려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시대를 표현하는 장면으로 쓰일 정도로 유명하다.
다시 토리야마 아키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그는 그림 그리는 것과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소년이었지만 일반적인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입사 후 바로 퇴사를 하고는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았는데 금전적으로 쪼달리는 삶으로 인하여 우연히 보게 된 소년 잡지에 만화를 투고하게 되었다.
그림에는 자신 있었던 토리야마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시고 한동안 백수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잡지 편집자의 눈에 띄어 원고를 꾸준히 보내게 되었지만 눈앞에서 원고를 찢기는 수모를 당하게 되고, 그나마 채택된 원고는 인기 순위에서 항상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필자도 잡지를 모으고 있었는데 그 잡지가 그 유명한 ‘주간소년점프’였다. 지금은 쉽게 핸드폰을 통해 웹툰이라는 컨텐츠로 만화를 접할 수 있었으나 1980년대 당시 만화는 오로지 세뱃돈을 모은 쌈짓돈으로 서점에서 만화책을 사서 보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특히 일본 만화는 이러한 매거진 형태의 만화잡지가 아니고는 절대 접할 수 없어 더 귀하고 애절했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꾸준히 모은 자식 같은 소년점프를 군대에 다녀오니 아버지가 전부 고물상에 팔고 프라이팬 한 개를 받아놨더라는……, 울면서 그 프라이팬에 계란 후라이를 해 먹었다는…….,
이처럼 토리야마는 계속 고배를 마시면서도 꾸준히 투고해 드디어 히트작을 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닥터 슬럼프’였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인생을 바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 캐릭터가 ‘아라레’라는 여자 캐릭터였다. 지금도 예능이나 코스프레 현장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데 둥그런 안경에 양팔을 벌리고 뛰면 영락없이 아라레라고 불렸다.
토리야마는 자신은 늘 게으르다고 말해왔지만 그는 언제나 완벽주의자였고, 약속을 지킴에 있어 한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한 점은 그의 최고 히트작인 ‘드래곤볼’ 연재에서 볼 수 있는데 닥터 슬럼프의 인기가 너무 높아 쉴 시간이 없자 그는 편집자에게 연재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최고의 인기 만화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편집자는 꾀를 내어 닥터 슬럼프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을 들고 오면 놓아주겠다 협상했다고 한다.
당연히 편집자는 이보다 인기 있는 작품이 나올 것 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던진 수였으나, 이 한마디가 전세계 만화의 판도를 바꿀 작품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작품이 바로 한번도 안본 사람은 있으나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전설의 만화 ‘드래곤볼’이다.

토리야마는 본인이 쉬고 싶어 차선책으로 내놓은 작품이 오히려 10년 넘게 그를 집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끌게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당시 드래곤볼의 파급력은 만화가 잠시 휴재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잡지와 관련 피규어, 식음료 파트까지 전방위적으로 매출이 급감할 정도였다. 일본의 경제가 흔들린다고 할 정도니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실제 드래곤볼의 연재가 끝나갈 무렵 일본의 문무성 차관이 직접 그의 집에 방문해 연재를 더 연장해 달라고 했다니, 더욱이 그의 원고가 늦어질 까봐 그의 집 앞에 공항까지 직선 도로가 깔렸다는 말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도시 전설일 수도……,)
그의 원고가 조금이라도 늦을까 매일 닦달하는 편집자들을 드래곤볼에 등장 시킨 장면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이스터에그’랄까. 필자가 찾아 보여드리고 싶지만 찾아보는 재미를 남겨 놓고 싶다. 작가인 본인도 출연한다. 꼭 찾아 보시길…….,
이토록 많은 걸작과 많은 이슈를 남기고 간 만화가도 드물 것이다.현재 ‘넷플릭스’에서 그의 마지막 유작인 ‘드래곤볼 다이마’라는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데 꼭 챙겨보았으면 한다.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의 지독한 완벽함과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연재를 쉬지 않는 점, 그리고 작품 활동 내내 단 한번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자기 관리는 지금의 우리도 본받아 마땅한 점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사망 후 많은 애도의 글이 올라왔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글이 ‘걱정 말아라! 드래곤볼로 살리면 된다!‘ 였다. 물론 그의 작품을 오마주하며 쓴 우스갯소리지만, 뭔가 잊고 있었던 학창 시절의 내 꿈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뛰며 우리는 무슨 꿈을 꾸고, 또 어떤 어른이 되기를 희망했을까? 지금 나는 학창 시절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가? 지금의 나는 좋은 어른인가? 좋은 부모, 좋은 남편, 좋은 아들인가? 나이 50에 접어들어 이 무슨 청승인가 싶지만 이런 의문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드래곤볼이 실제 있다면 신룡을 깨워 물어보고 싶다.
“어이 신룡! 나 지금까지 잘해왔고,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자, 여러분들은 지금 자신만의 드래곤볼을 찾고, 모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현재 삶에 찌들어 젊은 날에 꿈꾸던 열정 가득한 나를 잊고 지내고 있는 건 아닌가?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드래곤볼을 모아서 꼭 학창시절 화려했던 꿈들을 이루어 나가길 빈다. 마지막으로, 나의 학창시절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준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나의 ‘원기옥’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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